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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경비구역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체결된 6.25전쟁 정전협정에 의해 만들어졌다. 정전협정에 따라 정전협정에 관한 업무를 처리할 군사정전위원회가 판문점에 설치되었고, 군사정전위원회 인근 지역을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으로 경비하게 되었다. 유엔군과 공산군이 경비를 하는 이유는 정전협정이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북한과 중국) 사이에 체결되었기 때문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예전에는 주로 휴전을 관리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으나, 1971년 9월20일 열린 남북 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군사정전 위원회의 회담장소 뿐 아니라, 남ㆍ북한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 및 남북을 왕래하는 통과지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은 휴전선 155마일중 한국국(350여명)과 마군(250여명)으로
구성된 유엔사령부 경비대대가 북과 함께 관할하는 유일한 지역이다.

▶ 평화의 집

평화의 집은 한국측에서 관리하는 건물이다. 자유의 집으로부터 130m 정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1980년 12월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지어졌다. 평화의 집에는 군사회담을 제외한 주로 정치적인 회담을 하기위에 지어졌다.

▶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은 휴전협정에 근거하여 협정의 감독과 한반도 긴장완화, 평화유지를 위한 협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 회담장에서는 장성급과
대령급이 만나는 군정위 회의, 비서장급 회의, 대령 이하의 참모장교 회의 등이 개최되고 있다.

▶ 돌아오지 않는 다리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이의 군사 분계선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공동 경비 구역 서쪽에 흐르는 사천에 위치한다.
1953년 한국 전쟁 말에 이 다리를 통해 포로 송환이 이루어졌다. 다리의 이름은 포로들이 한 번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본래의 다리이름은 널문다르 였으며, 1953년 7월 휴전협정 이후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 자유의 집

자유의 집은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우리측 지역에 세운 건물이다.
이 건물은 남북 이산가족상봉행사 목적으로 세워졌으나 이 목적을 위해서는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단지 남북적십자연락사무소가 설치되어 남북간의
연락 업무를 수행하는 용도와 각종 남북회담, 접촉, 교류시 이를 지원하는 시설로 활용된다.

▶ 도끼만행 사건 장소

판문점 도끼 살인사건(板門店 도끼 殺人事件)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인근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미루나무 기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조선 인민군 군인의 도끼에 맞아 즉사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이다.

서울시 서초구 신반포로 194 서울고속터미널 9층 928호 (주)중앙고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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